어렸을 적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우리 부모님에게 설명했던 나의 특징은 '송곳 눈'이었다. 한번 제대로 꽂히면 그것 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꽂히는 대상은 종종 내 감정이 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강한 감정적 몰입이 일어나 문제를 일으키곤 하였다. 감정이 속으로 빠르게 격해져서 그것이 표현되면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깜박이도 켜지 않은 '감정적 급발진'이 되는 것이다. 예상 가능하지만 이러한 성향은 짝사랑을 실패 시키기 딱 좋은 성향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가뜩이나 감정 표현이 서툰 시기에 친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조차 공감 받기 어려웠고 왜 이렇게 감정을 혼자 극적으로 느끼냐는 타박을 받곤 했다. 그래서 내 어릴 적 기억은 이런 감정의 급 발진으로 인한 타인들과의 충돌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점차 철이 들면서 이런 갈등에 지쳐 내 감정을 공감 받는 형태로 표현하기 위하여 열심히 내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익혔다. 이를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적절한 감정을 적절한 정도로만 느끼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다혈질 성향도 줄어들고 사람들에게 공감 받는 형태로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된다. 이 결과 역설적으로 정이 없고 차갑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혼자 급 발진하여 남들과 충돌하거나 마음 상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감정을 조절하는 것의 시작은 모든 감정의 시작인 선호를 조절하는 것이다. 좋아해도 '괜찮은' 것만 좋아하고 좋아하면 안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떼는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떼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나처럼 감정적 몰입이 심한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서서히 마음을 떼는 것 보다 순식간에 잘라내는 것이 나았다. 순간적으로 강한 이성적 의지를 발휘하여 돌이킬 수 없게 대상을 접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위해 좋아하던 게임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게임을 연상시킬 수 있는 모든 물건을 제거하고 다시는 못하게 아이디를 삭제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학생 때 게임과 같은 유혹들을 끊어내는데 도움이 되었고 무언가를 끊어내는 방법은 점점 익숙해져 나의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이 방법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많은 것들을 끊어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학창 시절 좋아했던 소녀시대나 게임, SNS, 당구, 웹툰같이 한때 매우 좋아했던 것들을 이런 방법으로 끊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심지어 이성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이런 식 이었는데 헤어지자고 한 순간 그 친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우고 다시는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한순간에 끊어내는 것이 나의 손쉬운 습관이 되어버렸다. 감정적으로 깊은 관계를 형성한 것을 이렇게 순식간에 끊어낼 수 있게 하는 에너지는 그 감정적 애착을 넘어서는 두려움이었다. 남들에게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된 것이다.
감정을 어느정도 조절하는 것은 중요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음으로써 좀더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급진적인 방법은 감정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데 유용하다. 하지만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한다. 감정을 내 생각대로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만큼 점차 내 진심을 알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잘 아는 것은 안 그래도 어려운데 머리로 원하지 않는 감정들을 무시한다면 점차 다른 모든 감정들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내 마음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대가는 장기적으로 혹독하게 치르게 된다. 어떤 감정들은 무시한다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억압되어 무의식 속에 남아있다가 언젠가 나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좋아하는 감정을 억지로 떼어야 할 때가 있다. 그 과정은 좋아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더욱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고통을 충분히 느끼는 것 만이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일 때도 있다. 과거에는 그 고통이 무서워서 끊어내고 내 마음을 무시하는 방법을 선택했었다. 그 고통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감정이든 지나간다. 그 시간을 못 참고 피하는 방법만 사용하면 앞으로 어떤 것도 좋아할 수 없게 되 버릴 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는 예전보다 용기가 생긴 것 같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아했던 마음 때문에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인정하고 기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고통이 무언가를 좋아했던 그 행복했던 시간의 연장선 임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이 고통스럽 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