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월요일에 일을 적응하는 것은 힘들다. 지난 주에 긴 연휴 그리고 주말간 과음 덕에 이번 월요일은 평소보다 배는 힘들다. 한겨울 고물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것처럼 한참을 노력한 후에 업무 모드로 돌아갈 수 있었다. 주말 간 멈춰놓은 팀원 간의 업무 분배를 다시 생각하자니 골치가 아파왔다. 업무에 비해서 사람이 모자란 것이 문제이다. 취업난이 심하다는데 왜 우리 팀에는 지원자가 없는지 궁금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내가 직접 콜드 메일이라도 돌려봐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해봤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나에게도 이런 월요일의 괴로움을 토로할 단톡방이 존재한다. 그 단톡방에 있는 두 친구는 대학교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만나 내가 개발자로 전향하기 전에 로스쿨 준비를 같이 하며 친해졌다. 이성적인 A와 열정적인 B,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나는 각자 성향이 다르고 주관이 뚜렷해서 부딪칠 법도 한데 오히려 서로의 다른 점을 재밌어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올해 로펌에 취업한 두 친구는 혹독한 직장인의 생활에 적응 중이다. A는 오랫동안 만났던 여자친구와 내년 3월 결혼을 앞두고 있고 B 또한 꽤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다.
오늘따라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친구들에게 궁시렁거려본다. 아 나의 아저씨 괜히 시작해가지고- 일이 손에 안잡힌다- 큰일났네- 라고 A가 답한다. 드라마를 추천해줬던 나는 괜스레 뿌듯해졌다. B는 한참 동안 답변이 없다. B는 오래 사귀었던 전애인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을 들어서 주말부터 쭉 기분이 언짢은 상태이다. 아직도 기분이 안풀렸나 싶어서 나는 B를 위해 기분 전환용 노래 하나를 추천한 다음 다시 일을 시작한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영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짜 큰일남- 저녁쯤 되어서 B에게 답변이 왔다. 평소처럼 일을 미루다가 벼락치기하고 있나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는데 평소와 반응이 좀 다르다. 꼭 만나서 해야할 이야기가 있다며 오늘 모일 수 있는지 물어본다. 아무리 우리가 자주 본다고 하지만 이렇게 당일 소집하는 경우는 없었다. 코로나 10시 통금이 거의 다 된 시간이라 밖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둘은 가까이 살지만 내가 그 친구들 자취방으로 놀러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서 둘은 B의 자취방에서 만나고 나는 화상으로 소식을 듣기로 했다. 11시가 다 되어 페이스타임이 걸려왔다. 수락해 보니 둘은 이미 막걸리 한병을 까고 있었다. 드디어 B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운다.
나 결혼할 것 같아. 좀 빨리- 라고 B가 말한다. B도 애인과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크게 놀라진 않았다. 그게 왜- 라고 묻자 B가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다. 왜겠어?- 순간 망치가 뒤통수를 때린 듯 멍해진다. 뭐?!- 진짜?!!- A와 내가 동시에 소리지른다. 주위에서 이런 소식은 종종 듣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친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처음이다. 이런건 20대 초반에 철없을 때 일어나는 일이 아니던가? 서른살 넘어 번듯한 직장을 가진 상태에서 이런 실수가 생긴다는 것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본인도 어이가 없는 듯 B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늘 소식을 알게 되어 곧바로 휴가를 내고 애인과 산부인과에 갔다고 한다. 내년 5월 예정이라고 했다. 놀라긴 했지만 원래부터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던 터라 그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양측 부모님을 뵈어 직접 말씀드렸다고 한다. 가장 두려워했던 단계였지만 의외로 양측 모두 따뜻하게 축하해주셔서 놀랐다고 한다. 우리도 격하게 축하해 주었다.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가운데 취업 후 1년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까 했던 B는 혼자 떨떠름해하며 못내 아쉬워한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B는 이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길에서도 금방 행복해 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우리가 금방 잘 수 있을리가 없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더 이야기 했다. 배가 너무 부르기 전에 식을 올려야 해서 3개월 내에 준비를 해야한다고 B는 걱정했다. 다행히 미리 결혼을 준비하던 A가 결혼식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당연히 A의 결혼식을 먼저 보게 될 줄 알았던 우리는 B가 새치기했다며 웃었다. 또한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하여 피임 실패사례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다. B도 본인이 끓는 물의 개구리였다고 반성하며 안전제일을 강조한다. 그리고 한동안 생각해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가정이 있는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치 가족처럼 아이들이 우리를 삼촌, 이모로 부르고 서로를 돌봐주는 모습을 그리며 기대에 부풀어 떠들었다. A와 B는 이제 나만 연인을 만나면 된다고 타박을 주었다. 억울했다.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도 나는 한참 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가까웠던 친구 두 명이 동시에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한 명은 한번에 두 단계를 뛰어넘었다.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단계를 나아갈 필요도, 그럴 마음도 없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단계가 달라지는 것은 다소 아쉬웠다. 단계를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계가 달라지면 삶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 마치 어릴 적 심각하다고 여기던 고민들이 커서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과 같다. A가 드라마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던 것, B가 전애인의 소식으로 기분 상했던 것, 그리고 내가 하던 업무 스트레스 역시 나름 진지한 고민들이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지금 이렇게 아등바등하는 것들에 있어서 조금 힘을 빼도 될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해진다. 아직은 나에겐 미지의 영역이지만 우리중 가장 먼저 가장 삶의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된 B의 앞길을 진심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