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술자리에서 사람들에게 "3000억이 갑자기 생긴다면 뭐할꺼야?"라고 물어본다. 이 질문은 예전에 동아리에서 초청했던 네이버 창립자 중의 한분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 분은 네이버가 성공하기 시작한 후 어느 순간 부터 삶에서 경제적인 제약이 사라졌는데 처음엔 좋았지만 그 이후에는 자신만의 가치를 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생활을 하지만 정작 그 목적이 충족된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잘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할 경제적 '필요성'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도 자신을 움직일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 대답은 그 사람에 대해서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우선 어떤 액수가 있더라도 재태크 생각만 하는 야심찬 친구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은 3000억이 아닌 3000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돈을 불릴 방법만 찾을 친구들이다. 썩 창의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돈 자체에 대한 뚜렷한 가치체계를 내재화 한 것이 신기하고 나름대로 멋지기도 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선 그동안 갖고 싶었던 것들을 먼저 사겠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좋은 집과 차를 사고 조금 더 욕심이 있는 친구는 골프장이나 섬 하나를 사는 것 까지 생각을 한다. 세계여행이나 유흥 같이 그동안 돈 때문에 못해본 경험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나아가 가까운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나누어 주는 것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3000억은 단순한 소비로 전부 쓰기엔 너무 큰 돈이기 때문에 그 이후의 대답이 필요하다.
이후의 대답에서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우선 목적이 아닌 그 과정 자체에서 의미를 얻을 수 있는 활동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주변에는 신기하게도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공부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신기하지만 그 사람의 특성에 따라 하고싶은 공부 분야가 물리, 심리학, 사학, 디자인과 같이 다양하게 갈리는 것도 재밌다. 이를 통하여 그 사람이 세상에서 정말 궁금해하고 관심있어하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사회 문제 해결과 같이 사회적 목적을 위하여 부를 사용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에 남는 대답은 한글의 세계화였는데 그 친구는 한국어를 편하게 쓰기 위하여 전세계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멋진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간혹 현실적 제약을 초탈한 듯한 대답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삶을 살겠다고 한다. 오히려 재산이 자신의 마음에 제약이 되는 것을 우려하여 모두 기부해 버린다는 친구까지 있었다. 그 친구가 실제로 그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싶은 멋진 마음가짐인 것 같다. 아주 큰 부를 얻더라도 그대로 살고 싶은 삶을 살고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부자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만의 중심이 강하게 잡혀있어서 외적인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따라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나도 항상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환경에 휩쓸리다보면 내 목소리에 자신이 없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이런 대답을 한 친구들을 보며 조금씩 용기를 얻는다.
내가 이 질문을 받으면 궁극적으로 나만의 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한다. 나는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상당히 문제의식이 많다. 한국 교육제도는 학생들이 교육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에 비하여 그 고통이 사회의 효용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 또한 학생들의 공부 이외의 강점들을 장려하고 지원하지 못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교육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런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진정 학생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만들고 싶다. 재미있게도 이 목표는 이 질문에 대답하면서 형성되었다. 어렴풋한 문제 의식만 가지고 있었던 것을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구체화 하다보니 이젠 나의 중요한 꿈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행복한 망상을 하는 게임이지만 나는 주위 사람들에 대하여 한층 더 깊이 알게될 수 있어서 좋아한다. 쉽게 드러날 수 있는 외면이나 행동은 누구나 파악할 수 있지만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이야기해 볼 계기가 없으면 알기 어렵다. 그 사람의 심층적인 동기를 아는 것은 그 사람의 다른 언행들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남들이 모르는 그 사람만의 비밀을 공유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이 질문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정리하면서 내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 지 생각해보는 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자신만의 대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