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의 눈에는 세상에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렇게도 큰 세상은 내가 아무리 부지런히 다녀도 다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한때 인생 목표가 '최대한 다양한 것을 경험하기'였던 적이 있었다. 이런 당돌한 목표에는 내가 직접 경험한 것만 믿는 반골적인 성격도 한 몫을 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를 실천했다. 부지런할 것, 그리고 반복하지 않을 것. 책, 영화를 꽤 많이 본 편이지만 웬만하면 같은 작품을 두 번 감상하진 않는다. 음식을 먹을 때도 되도록 새로운 식당의 새로운 메뉴를 찾는다. 네덜란드 교환학생 기간동안에는 이틀만 틈이 나더라도 혼자 배낭을 메고 유럽의 새로운 도시로 떠났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을리 없다. 대부분의 경험들은 좋지 않더라도 만회하면 된다. 그러나 담배같이 한 번의 경험이 삶에 되돌리기 힘든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험들은 나 뿐만이 아니라 타인에게 까지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나쁜 경험에서도 배울 점은 있다지만 주위의 말을 좀 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세상엔 굳이 안해도 되는 경험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졌지만 해보고 싶은 것들은 오히려 줄었다. 역설적으로 예전에는 비싸도 무리해서 경험했던 것들이 지금은 나에게 그만한 가치를 주지 못한다.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굳이 하지 않게 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예전처럼 새롭다고 무작정 달려들지 않고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게 되었다. 몇 번 경험해보면 아무리 좋은 음식, 숙소, 여행지도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다. 점점 직접 경험하는 것 보다 머리로 예상하는 것이 편하게 되었다. 대신 세상이 예전만큼 재미있어 보이지는 않게 되었다.
얼마 전 회사 워크샵에서 배낚시를 처음 해보았다. 하기 전에는 뻔한 활동을 굳이 돈주고 하나 싶었다.그동안 많은 컨텐츠를 통해서 낚시를 접했기 때문이다. 책, 영화, 심지어 예능에서도 낚시를 즐기는 아저씨들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낚시는 머리속으로 어느정도 예상가능한 활동이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미끼를 끼우고 입질이 오기를 기다리는 스릴을 즐기느라 한시간이 어떻게 갔는줄 몰랐다. 어쩌다가 큼직한 쥐치의 허리를 꿰었고 펄떡이는 물고기를 손으로 들고 사진을 찍었다. 뒤늦게 본 사진 속의 나는 신나게 웃고 있었다.
세상이 예전만큼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이 많아지는 만큼 새로운 것들이 적어질테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당연하게도 머리 속으로 예상하는 것과 직접하는 것은 다르다. 한번 해본 것도 두번, 세번 하는 것 다르다. 익숙하다고 생각하며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자신 때문이다. 몇 번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세상에 흥미를 잃은 늙은이가 될 뻔 했다. 세상엔 아직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