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형의 청첩 모임을 다녀왔다. 대학 입학때 만났던 동기들이니 안지도 10년이 넘은 친구들이다. 학부 동안에는 거의 가족처럼 붙어다녔지만 각자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일이다 가정이다 해서 이런 경조사가 아니면 모이기도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기적으로 연락을 유지하고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났어도 이 그룹 사람들은 아직도 만나면 새내기처럼 떠들고 술을 마신다.
다들 일정이 있어 멀리 놀러는 못 가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마음놓고 놀기 위하여 홍대의 파티룸을 빌렸다. 파티룸은 옥상의 반 야외 형식의 방이었는데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서 우리가 맘놓고 떠들기 제격이었다. 고기를 사와서 옥상 불판에 구워먹으니 제법 엠티 느낌이 났다. 떠드는 이야기의 태반이 과거 이야기인 것으로 보아 풋풋할 때 만났던 우리도 아재가 다 되었다.
이야기 거리가 떨어지자 가라오케 기계와 블루투스 마이크로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동기들은 발라드를 사랑하고 노래도 상당히 잘 부른다. 그래서 새내기 때 부터 우리는 곧잘 술 한잔 한 뒤에 노래방을 가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때면 슬며시 혼자 빠져 집에 가곤 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태생적으로 목이 약해서 조금 이야기만 많이 해도 금방 목이 쉬곤 했다. 노래방을 가면 한 두 곡만 불러도 목이 쉬어 음이탈이 나는 것이었다.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는 것도 속상한데 잘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노래방에 간다고 하면 노는 것이 아니라 긴장이 되고 결국 잘 가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날따라 그런 것들이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순간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자 내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아는 동기들은 눈이 휘둥그래해졌지만 이내 신나게 환호해주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닥 잘 부르지는 않았고 음이탈도 신나게 났지만 간만에 친구들이 호응해 주는 가운데 부르는 노래는 신났다.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었고 내 마음대로 될 필요도 없었다. 못 부르면 어떤가? 나는 즐거웠고 그 순간은 기억에 남았다. 내가 한 때 참 피곤하게 살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