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re the odds this is legit not just some lie we all telling ourself because we are afraid to die alone. Because you know, that's exactly how we all die. Alone!
- Rick's wedding toast
릭 앤 모티에서 릭이 가장 친한 친구 결혼식 축사에서 하는 이 대사는 릭의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세상엔 어떤 의미도 없고 모두 사랑받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우리는 결국 혼자 죽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결혼식 하객들은 불편함을 느끼는 동시에 탄식을 내뱉는다. 이는 릭의 말이 축사로 다소 적절치 않을 뿐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죽는 것은 세상의 어떤 부자나 권력자도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며 '혼자 죽어라!'라는 말은 살아있는 존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저주이다. 이 두려움은 마음 깊숙이 이기적인 인간 조차도 타인을 신경 쓰는 척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인간 관계에서 아픈 상처를 받은 사람도 인간 관계를 위하여 다시 한번 노력하도록 만든다.
어느 날 샤워하는 도중에 나 역시 혼자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중 혼자 죽는 다라는게 엄밀하게 어떤 것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해졌다. 혼자 죽는 상황을 피하는, '같이 죽는' 상황이란 어떤 상황일까? 가장 텍스트에 충실하게 해석하면 죽는 시점을 타인과 일치시키는, 즉 타인과 한 시점에 죽는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한 연인이 비슷한 시기에 수명을 다하여 함께 눈을 감는 로맨틱한 장면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내 노력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행운이며 실제로 매우 드물 것이다. 자연 수명은 삶의 수많은 요소들이 축적되어 결정되는 것으로 이를 누군가와 일치하게 하는 것은 10년뒤의 날씨를 예측하는 일과 같다.
이를 인위적으로 발생하게 만들려면 점차 상황이 그로테스크해 지는데 한명이 죽는 순간에 다른 사람의 생을 강제로 마감시키는 방식이 있다. 옛날에 왕이 죽으면 그의 노예들도 함께 무덤에 생매장함으로써 왕이 혼자 죽는 것을 피하는 순장 풍습도 존재했다. 생전에 자신이 괴롭히던 사람들 여럿과 함께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은 좋은 선택처럼 보이진 않지만 그만큼 혼자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지위고하를 초월한다. 하지만 현대에서 혼자 죽기를 피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자신이 죽을 때 다른 사람들도 함께 죽길 바라는 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렇다면 좀 더 현실적으로 혼자 죽지 않는 방법은 죽는 순간에 누군가가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이는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모습보다는 좀 더 위안이 되는 장면이다. 하지만 죽을 때 단순히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 우리에게 충분할까? 사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시점에는 의료진과 같은 누군가 라도 함께 있을 확률이 높다.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것 보다는 낫겠지만 죽을 때 의료진만 함께 하는 상황은 우리가 그리는 이상적인 죽음은 아닐 것이다.
릭이 우리 모두는 혼자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죽음이란 결국 혼자 겪어야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입구까지는 누군가와 함께 갈 수 있더라도 결국 각자 다른 문으로 혼자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마음 속 깊이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더라도 죽음이라는 경험을 공유하지는 못하더라도 삶에서 가장 두려운 순간을 맞이할 초입까지 누군가가 함께 있어준다면 혼자 있는 것 보다 훨씬 안심이 될 것이다. 그 입구에 함께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 입구까지 가는 과정 동안 손을 잡고 배웅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민을 가는데 공항에 배웅 나오는 사람이 생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큰 위안이 될까?
혼자 죽지 않는 것의 중요한 요소는 단순히 어떤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이 아닌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함께 해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에서 누군가를 사랑했고 사랑받고 떠난다는 사실만큼 죽음의 문턱에서 위안이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와 기억과 감정을 공유한 의미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린다는 것은 마지막 시점에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해줄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릭의 조소를 상당히 무색하게 만든다.
불운으로 인하여 죽음의 순간에 내가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줄 사람이 옆에 있지 못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불행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가장 아름답고 위안이 될 기억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런 기억이 없다면 아무리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죽는다고 하더라도 혼자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고 기억할 사람이 있다면 어떤 죽음의 상황에서도 진정으로 혼자 죽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충분한 사랑을 했느냐 이고 이는 나의 삶 전체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의 운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좋은 죽음은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삶을 전제로 하며 삶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충분히 했다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두려워 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