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간 받았던 심리상담이 오늘 끝이 났다. 처음엔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하길래 받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할말이 없을 정도였다. 뭐라도 말을 해야할 것 같아서 "왜 밤만 되면 자기가 싫을까요?" 따위의 싱거운 소리를 하고 괜히 민망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사소한 고민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신기하게도 내 자신을 이해하는 단서로 이어지게 되었다.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의 지도를 그려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처음엔 마음의 지도라는 개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감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었고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충동적인 감정을 잘 자제하고 정당한지 생각한 후에 정제된 형태로 표현을 해야 사람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감정적 문제란 감정의 통제에 얼마나 능숙해지냐의 문제였다. 하지만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 방법의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이 정당성을 획득한 순간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자신이 옳다는 착각이 타인에게 폭력으로 가해질 위험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언제 기쁘고 서운하고 화가나도 '괜찮은지'만 생각하다 보니 실제로 내가 언제 그런 감정들을 느끼는지에 대해 살펴볼 기회를 잃는다는 점이다. 감정을 느끼는 것을 항상 표현할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어떤 것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누군가 답장을 안해서 화가 났다면 그 감정을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왜 내가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생각하다 보면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기 싫은' 나의 문제였다는 것을 깨닿게 된다. 이런 내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동안 나는 감정을 자제하는 것에 급급하여 실제로 내가 어떻게 느끼는 지에 대해서 경시해왔던 것 같다. 내 '마음의 지도'는 횡하니 비어있었던 것이다.
상담을 받으며 어떤 지식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너무 당연해서 있는 줄도 몰랐던 전제들을 발견하고 이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무절제한 감정표현의 반대는 무감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며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르지만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조금 더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상황에서 왜 어떤 감정을 그리는 지에 대한 '마음의 지도'를 조금씩 그려가 보려고 한다. 나이를 먹어도 아직도 이렇게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아서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