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부 때 경영학이 본전공이었지만 사학을 이중 전공하였다. 경영학과 사학의 조합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이 선택의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했고 나는 여러번 이에 대답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만의 대답이 정리되었다. 우선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책, 만화, 영화, 드라마와 같이 이야기가 있는 컨텐츠를 모두 좋아하는데, 당시 나는 역사를 재미있는 장편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때 국사는 공부했지만 세계사를 배우지 못했던(?) 나는 유명한 이야기들을 모른다는 것이 항상 아쉬웠다. 물론 이런 나의 유희적 욕구를 숨길 실용적인 명분도 필요했다. 그 당시에는 로스쿨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역사학을 통해 읽고 쓰는 연습을 함으로써 진학을 대비한다는 상당히 수상쩍은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내가 사학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인문학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인문학이 나에게 신비로운 힘을 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 때문에 군대에서 인문학에 빠져 동서양의 인문 고전까지 읽으려 하였다. 그때 나는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사적인 맥락을 알아야 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다른 인문학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역사를 공부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막상 역사를 공부한 후에는 여러가지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우선, 당연히 역사학은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배우는 학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역사학은 사료를 통하여 과거의 진실 찾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재미있고 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는 다소 실망이었다. 또한 역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전공 수업 자체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훨씬 많고 중요하다보니 내가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면 전공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라는 발칙한 생각까지 들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인문학에 대한 믿음이 많이 줄어들었다. 인문학적 지식은 로스쿨 입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취업을 위해 인문학을 어필하는 것은 증명하기도 쉽지 않고 매력적이기도 힘들었다.
로스쿨 입시가 좌절된 후, 나는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되어 머신러닝을 공부하여 데이터마이닝 연구실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역사 지식은 전혀 도움이 안되었고 나는 역사 전공 수업을 들을 시간에 컴퓨터나 수학 과목을 들을 것을 아쉬워하였다. 이후 내가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숨기고 싶은 민망한 과거처럼 되어 간혹 술자리에서의 안주 거리로 소비되는 정도의 사실이 되었다. 진로를 바꾼 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으로 이 분야의 지식을 쌓기 위하여 노력을 하였다. 그렇게 아둥바둥 지낸지 몇년 정도 흘러 어느덧 나도 이 분야의 다른 사람들 만큼은 뭔가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무렵 그제서야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소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런 면은 단순 기술적인 역량의 측면은 아니었고 오히려 현상을 보는 시각에서의 차이였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이러한 특징은 점차 이 분야에서 나를 특징지어주는 색깔이 되었다. 이런 시각의 차이가 내가 과거에 공부했던 것들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고 인문학, 그 중에서 역사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거 나는 인문학으로 꼽히는 문, 사, 철 중에서 나는 역사가 왜 인문학에 속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을 직접적으로 탐구하는 문학, 철학과는 달리 역사학은 사실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학은 과거의 사실만을 단순하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와 같은 과거에 대한 해석까지 포함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이며 심지어 기록자의 의도도 의심해보아야 한다. 십자군을 소집한 교황 우르바노 2세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기록만을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가치관에 비추어 종교적 목적 이면에 있는 정치적, 경제적 목적까지 이해해야하고 그에 따라 교황의 행보들을 해석해야 한다. 이렇게 다른 시공간에서 존재했던 사람들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을 이과적으로 표현하면 그 사람의 반응을 예측하는 것(input에 대한 output을 추정), 즉 사람을 모델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사람들이 특정 시공간적 환경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사람에 대한 좋은 모델링을 위한 학습 데이터가 된다. 물론 사람들의 진정한 생각이나 의도는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기록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진의를 추정해야 한다. 이렇게 역사학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고도의 훈련작업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인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역사를 공부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내가 현상을 보는 시각에 녹아들게 되었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아주 긴 시간 단위로 현상을 관찰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데 이는 현재의 역사도 긴 안목으로 보는 습관을 길러준다. 최근 시진핑이나 푸틴과 같이 독재를 통하여 국가의 성장을 견인하는 사례를 보며 독재의 효용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국가 전체를 한 사람의 역량에 의지하는 1인체제는 그 효과의 변동폭이 매우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좋은 리더가 있다면 크게 성장할 수도 있지만 나쁜 리더를 만났을 때 빠르게 망하기도 쉬운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좋은 리더들만 선별하여 승계하는 것이지만 역사는 인간에게 능력있는 리더들의 평화로운 승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최악을 피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으며 그 결과가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런 긴 과정을 아는 상태에서는 현재 독재로 발전하는 국가들의 모습이 단기적일 수도 있고 민주주의가 현재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사회체제라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역사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절대적인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 현재에 아주 견고해 보이는 문화나 가치도 과거의 필요에 따라 임의적으로 생성되어 내려온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한 예로, 서양에서 지금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에티켓은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 시기 자신의 권력으로 귀족들을 줄세우기 위하여 탄생한 것이다. 현재까지도 에티켓에 고결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거에 임의적으로 탄생한 문화가 현대에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면 그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이러한 통찰은 문화, 제도뿐 만 아니라 가치관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아주 당연해 보이고 견고해 보이는 현재 사회의 가치관도 시공간 속에서 상대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나의 가치관도 점검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고 나아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통찰은 현재 시스템의 모든 것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할 필요는 없다는 자유를 준다. 나아가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요소들이 가장 최적의 상태가 아님을 알게 되면 이도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창의성이란 무조건 새로운 것만을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요소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현재에 의미있게 창조하는 것이다. 현재의 것들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소가 과거에 왜 탄생했는지를 이해하고 현재에도 그 이유가 유효한가라는 고민을 한다면 현재를 큰 부작용 없이 개선할 수 있다.
이렇게 역사는 나의 시각에 여러 영향을 주었으며 다른 면들과 조화를 이루어 나만의 독특한 시각을 형성하는게 크게 기여를 하였다. 그럼 내가 과거에 그만큼 시간을 쏟을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이렇게 당연하고 누군가 요약해서 전달해 줄 수 있는 교훈을 얻기 위하여 세계 역사를 공부해야한다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교훈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확신을 가지려면 자신이 직접 공부를 하고 그에 따른 결론을 스스로 내리는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결론을 좀 더 효율적으로 도달했으면 좋았겠다는 후회를 할 때가 있다. 과거에는 나도 기술 공부를 좀 일찍 시작할 것을 많이 후회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은 과거의 어떤 요소가 빠지더라도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기술을 사랑하는 마음도 나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평생 기술만 공부했다면 나라는 사람은 한 색으로 그린 그림처럼 심심했을 것 같다. 역사 덕분에 나의 분명하고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그 선택에 감사한다. 나아가 자신을 찾아가며 고민하고 방황하며 과거를 아쉬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그 과거는 당신을 당신으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부분이며 이는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한 삶의 무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