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수능 공부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나는 언어를 가장 어려워 했던 것 같다. 다른 과목들에 비해서 항상 시간이 모자랐고 잘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르겠어서 막막해했다. 특정 지식들을 물어보는 다른 과목들과는 달리 언어의 비문학 지문은 항상 새로운 지식과 논리 구조를 가지고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기출 문제를 몇 번이고 풀어도 공부했던 내용들에 익숙해질 뿐 새 지문이 나오면 또 다시 오래 걸려 쩔쩔맸다. 언어를 타고난 것 처럼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너무 신기했고 내가 열심히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당시엔 인내심이 많이 부족했다).
언어와의 악연은 몇년 뒤 법학적성시험을 준비할 때 이어졌다. 대학 생활 동안 교양 수업에서 책도 좀 읽고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꾸준히 활동했던 나는 글을 꽤 좋아하게 되었고 시험에서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은근한 기대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혹독했다. 수능 보다 더 어려운 지문을 더 빨리 풀어내야 했던 법학적성시험의 언어영역에서 나는 여전히 시간이 모자랐고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얻게되었다. 하지만 시험을 준비하면서 내가 언어 영역을 특히 어려워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았다. 나는 한번 익숙해진 패턴을 기억하는 것은 잘하지만 새로운 패턴에 적응하는 것이 느린 타입인 것이다!
내가 언어보다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도 수학은 이미 정해진 몇 가지 패턴을 빠르게 적용하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글은 패턴들이 너무 다양하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내 페이스대로 읽으며 작가의 패턴에 천천히 익숙해지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새로운 패턴을 파악하고 응용해야 하는 언어영역을 어려워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나의 능력 부족을 특성 탓으로 돌리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이런 특성을 바꾸기 싫다는 고집마저 생겨 그 뒤로 언어 영역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은 그 후로 내 자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무언가에 익숙해지는데 다른 사람보다 오래 걸린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패턴들은 포기하고 익숙해져야 할 중요한 패턴이 있다면 남들보다 의식적으로 더 시간을 들인다. 즉 머리가 부족하면 노력으로 때우면 되는 것이다. 운 좋게도 내 페이스 대로 업무를 할 수 있는 직무를 만나서 그럭저럭 잘 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내 페이스대로 익숙해 질 수 만은 없는 패턴들이 있는데 바로 사람들이다.
사람도 여러 패턴들을 합친 하나의 패턴처럼 생각할 수 있다. 모습과 목소리 같이 드러나는 패턴도 있지만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 같이 숨어있는 패턴들도 있다. 이런 사람의 패턴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은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이지만 나 같이 오래 걸리는 사람들은 '낯을 가린다'는 평가를 얻는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의 스킬은 생겼지만 본능적으로 어떤 사람을 편하게 느끼는데 까지 최소한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나도 도저히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모임에서 사람들끼리 빠르게 친해질 때 나 혼자 뚝딱거려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는 것 처럼 보인다. 반대로 한번 익숙해진 사람에 대해서는 나만의 내적 친밀감을 혼자 유지하고 있다가 오랫만에 만난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얘랑 그렇게 친했던가?
초등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전, 우리 가족은 종종 나와 비슷한 또래의 어린 아이들이 있는 다른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다른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거나 우리가 놀러가면 어른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 꽃을 피우는 동안 아이들은 우리들끼리 시간을 보내야 했다. 초반 몇 시간은 새로 만난 아이들이 불편해서 제대로 놀지 못하고 뚝딱거렸지만 결국은 항상 새 친구에게 정이 들었다. 막 재밌어질만 하면 어김없이 헤어져야하는 시간이 되었고 나는 아쉬워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한참동안 불편해하던 애가 막상 집에 간다니 떼를 쓰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어린 나도 내 자신이 이해가 안 갔다. 시간은 충분히 있었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재미있게 놀았으면 이렇게 아쉽지 않았을 텐데.
공부나 업무는 내 페이스 대로 할 수 있고 언어 영역은 포기해도 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울고 불고 떼쓰던 시절의 어린 애와 크게 다르진 않다. 여전히 누군가를 진심으로 편하게 느끼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막상 헤어질 때가 되면 누구보다 아쉬워한다. 다만 달라진 점은 울면서 아쉬움을 드러내지는 않는다는 점이고 오래된 인연들을 더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매 분기마다 만나서 친해질만 하면 헤어져야 하는 메모어는 나에게 힘든 시스템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아쉬움을 이기지 못해 벌써 일년이나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조금 쉬면서 인연들의 소중함을 다시 느껴볼 때가 된 것 같다.
12주간 모두에게 정이 많이 들어서 막상 헤어질 때가 되니 아쉽습니다. 나중에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연락을 주시거나 어디에선가 만나면 많이 반가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좋은 글 많이 써주시고 제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