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를 한지 1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당연하게도 너무 편하고 좋았다. 붐비는 출퇴근 길에서 진이 빠지지 않아도 되고 밥을 먹으러 가기 위해 만원 엘리베이터를 몇 번이나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방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고 잠옷을 입고 일하며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초반 몇 달 동안은 마냥 신났다. 하지만 재택 근무가 길어지면서 보이지 않던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어렵다는 것이 가장 힘들다. 오해는 말아야 하는데, 그 전이라고 교류가 아주 활발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 팀의 업무는 논문을 연구하고 코딩을 하는 일이어서 대체로 혼자서 고민하고 컴퓨터와 싸운다.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때를 제외하고는 업무적으로 서로 말을 많이 해야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런 업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차분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다. 나만 해도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고 노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내향적인 편이다. 그래도 우리 팀에서 회식을 할 때면 내가 가장 시끄럽고 말 많은 사람이 되곤 한다. 이런 우리 팀은 서로의 개인 사에 대해서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다같이 출근해 있을 때면 오고 가며 미약한 교류라도 있었다. 혼자 끙끙대다가 괜히 주위를 한번 둘러볼 수도 있고 질문을 핑계 삼아 괜히 말 걸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재택을 하는 동안에는 그럴 수 조차 없다. 집에 사람이 없는 날이면 정말 하루 종일 누구와도 이야기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이런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달이 되고 일년이 넘어가다 보니 아무리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라고 할지라도 답답해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다.
재택 근무를 하며 유일하게 서로를 볼 수 있을 때는 화상회의 때이다. 화상이라도 회의는 회의이기 때문에 이에 참석 할 때에는 조심해야한다. 사적인 공간에 회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창문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도 화상회의에 참석할 때면 후줄근하고 목 늘어난 티셔츠를 외출 용의 깔끔한 티셔츠로 갈아입곤 한다. 화상회의를 위한 카메라는 책상 위를 비춘다. 책상 위의 전체 공간이 화상회의를 위한 얼굴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책상에 사적인 물건들은 어느 정도 치워 두려고 한다.
화상회의 동안은 책상 아래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급하게 사적인 물건들을 숨길 때 책상 밑으로 내려 둔다. 붙여 놓은 메모, 장식용 장난감, 선물 받은 인형 같이 회의에 등장하기 상당히 민망한 것들은 서둘러 책상 밑으로 대피시켜 둔다. 그 밖에도 책상에 굴러다니던 군것질 거리들을 숨기기도 하고 한번은 음주 업무를 하다가 마시던 맥주를 급하게 책상 아래로 치운 적도 있다. 가끔 회의하면서 다른 사람의 책상 아래는 어떤 비밀들이 숨어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화상회의를 하는 동안에는 심지어 바지를 안 입고 있더라도 서로의 책상 아래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여럿이서 화상회의를 할 때였다. 논의가 열띠게 진행되고 있는데 참석자 중 한 분의 화면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의 변화가 느껴졌다. 처음에 살짝 당황하더니 책상 아래를 보며 뭔가를 한참 고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이크를 꺼 놓으셔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책상 아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우리는 진행하던 회의를 멈추고 무슨 일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그 분은 잠시 머뭇거리시더니 책상 아래로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책상 밑에서 그 분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건 하얗고 작은 말티즈였다. 이름은 보리고 6살이라고 했다. 보리는 책상에 앉아서 한참동안 우리와 인사를 나누었다. 노트북의 분할된 화면 사이로 훈훈한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업무 공간에서는 사적으로 친해지는 것에 조심해야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하는 동안 사적인 관계를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다. 조금의 인간적인 교류만으로 일하는 시간을 훨씬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어려운 시절이다. 일하는 동안 우리는 책상 위의 공적인 모습만 공유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책상 아래의 사적인 비밀도 조금은 공유해도 괜찮을 것 같다. 회의 중간에 나타난 보리가 행복을 가져다 준 것처럼 의외로 사람들은 서로의 사적인 모습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