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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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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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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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인 줄 알았다. 유난히 바빴던 한주를 마치고 평소에 하지도 않던 반신욕을 위해 욕탕에 들어가 한참을 책을 읽었다. 그날 따라 책은 또 왜 이렇게 재미있던지 물이 차게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읽다보니 거의 물 속에 한 시간을 있게 되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몸이 노곤하다 못해 뻐근하게 느껴진 것도 바쁜 와중에 시간내어 PT를 받고온 탓인 줄만 알았다.
밤새 식은 땀이 나고 근육통이 왔을 때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침이 되자마자 약국에서 자가진단키트를 잔뜩 사와서 검사를 해봤지만 음성이었다. 믿음직 하진 않았지만 목도 전혀 아프지 않았고 몸살이 날 이유도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참 공교로운 타이밍에 몸살이 났다고 생각을 했다. 아니, 사실 몸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말 일정이 잔뜩 잡혀있고 다음주에 해야할 일들도 산더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주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몸살이라면 잠시만 쉬고 저녁 약속에 나가도 괜찮을 것이다. 오랫만에 친구들을 보고싶어 직전까지 고민하였다. 그날 하루 종일 음성이 나왔지만 고민 끝에 불참을 하였다. 결국 그 다음날 새벽에 양성이 나오고 말았다.
이번주에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옮겼을까봐 너무 민폐스러워 미안하였다. 친한 사람도 있었지만 알게된지 얼마 되지 않는 분들도 있었다. 이 분들은 나 때문에 자신이 만났던 다른 분들께 연락을 드려야 하게 되는걸까? 양성 결과를 보고 한동안 그냥 앉아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일은 해결되지 않는다. 정신 없는 가운데 이번주에 접촉한 모든 분들께 한분 한분 양해와 사과의 문자를 보내고 다음주 일정들을 하나씩 취소하거나 조정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다행히 내가 전파한 분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만약 몸살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저녁약속을 나갔다면 어땠을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나름 내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Wishful thinking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안 좋은 결과를 받아드리기 싫은 마음이 판단을 흐려 대참사로 이어질 뻔 한 것이다. 내 자신이 항상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었던 것 같아서 반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