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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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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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202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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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만원을 내면 이메일을 통해 글을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작가가 있다고 들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구독 모델이라고 생각해서 너무 비싸지 않은가 생각했지만 이내 일회성 가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작가는 신변잡기적인 에세이를 재미있게 써서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보내줬다. 그렇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는 경영대-공대의 길을 걸어왔으니 아마 예술과는 정반대의 영역에서 살아 왔을 것이다. 나도 음악, 책, 영화는 사랑하지만 주위에서 예술가는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접하는 예술 작품들은 마치 저 세상에 살고 있는 예술가라는 미지의 집단이 이 세상에 던져준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문화를 누려왔지만 그것을 창조해내는 예술가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몰랐고 솔직히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여러 기회를 통해 예술가들도 (당연하게도) 사람이며 내가 직업을 가진 것 처럼 이들도 직업으로서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와 이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내가 예술가에 대해 묘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경영대에서 배운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가치 창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제멋대로인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싶어하는 것 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예술가는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따르는 대가로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행복을 위해서 가난이라는 불편함을 감수할만한 용기가 없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선택을 존중했다.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삶을 부러워 했고 그 자유를 동경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이기적으로 보이는 선택의 무책임함이 경멸스럽게 느껴졌다. 사람이 살기위해 필요한 의식주는 사회에 의존하면서 기여하려고는 않는 것이 얄밉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예술가들이 경제적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해야하는 것들만 하면서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면서 사회에서도 풍요롭게 누리고 싶어하는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자신의 예술적 영감에 따라 쇠줄을 퉁기거나 종이 위에 색있는 기름을 칠하는 것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것은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하기 싫더라도 몸을 일으켜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거나 집을 지어주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잘 보상받아야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사람은 하고 싶어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없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하고 싶어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 어쩐지 익숙한 말이다. 어렸을 적 많이 들었다.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선택을 해야한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의 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나는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집의 생계를 위해 싫은 일도 마다않는 아버지를 보며 어렴풋이 저게 책임이라고 느꼈다. 장남, 가장, 남자의 책임은 하고 싶은 것 보다 해야할 일을 우선시 하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는 답답해 보이는 법조계보다 재밌어 보이는 테크 산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 선택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선택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다고 아빠와 대판 싸웠다. 하지만 나도 확신이 없어 나의 선호 뿐만 아니라 사회의 수요, 적성, 산업의 전망까지 고민하며 정교하게 조사하고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선택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성공한 경험을 해 놓고 아직도 세상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지식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꼰대라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가 꼰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도 당연한 것은 예술가들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며 살고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나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싶은 예술만 하다가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당한 일이 아니라 축하해줄 일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가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더 나은 사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