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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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2022/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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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튜브에서 게임 관련 영상을 많이 본다. 특정 게임의 플레이를 보는 것은 아니고 "불가능한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과 그걸 깬 미친 유저들"과 같이 특정 주제의 게임들이나 사건들을 소개하는 컨텐츠이다. 나는 지금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학창 시절에 게임을 엄청 좋아헀던 적은 있었으나 다행히 내 실력은 열정을 따라가지 못했다.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잘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대학만 가면 그동안 못했던 게임을 실컷 하겠다는 꿈을 품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조차 게임 실력을 꾸준히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성실하지 못했고 그렇게 게임의 세계와는 담을 쌓게 되었다.
그렇게 게임과 멀어진지 10여년이 되었지만 갑자기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현재 다니는 회사의 제품에 게임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형 챗봇은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재미를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 게임과 통하는 면이 많다. 그동안 게임의 유저로써 컨텐츠를 감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개발자 입장에서 게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세상에 정말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있고 그 세상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개발자들의 철학과 의도가 있고 유저가 자기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떤 게임들은 예술이라고 불릴만 한 것 같다.
그림이나 책, 영화 같은 작품들의 제작자들은 한번 완성되면 그 감상은 감상자의 몫이라고 완성된 작품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꺼리곤 한다. 게임이 기존 예술들과 다른 점은 유저가 작품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할 뿐만 아니라 제작자도 업데이트를 통해 작품에 지속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게임만의 특별한 점이 나타난다. 개발자는 항상 의도를 가지고 게임을 설계하지만 유저들은 그 게임의 설계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 유저는 온갖 창의성을 발휘해서 적극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동안 그 플레이 방식이 설계 의도를 벗어나기도 한다. 게임 시스템 내의 버그를 발견하여 이를 이용하기도 하고 아주 오랫동안 게임을 마스터 한 '고인물'이 되어 버그처럼 보일 정도의 플레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럴 때 개발자는 이런 유저들의 행동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결정해야하고 그 결정에 대해 유저들과 소통을 해야한다.
이런 면에서 게임의 역사는 유저와 개발자 사이의 상호작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자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람들은 그 예상을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벗어난다. 이를 보다보면 사람들이 어떤 요소에서 재미를 느끼는지 뿐만 아니라 그 재미를 위해서 얼마나 창의적이고 성실해질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이런 몰입이 금전적인 부분 전혀 없이 이루어진다는 점도 재미있다.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경제적 인간을 벗어나 사람들을 강하게 동기부여할 수 있는 심리적인 요소가 엄청 다양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유저들 중에는 순수하게 남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놀라운 열정을 쏟는 사람들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보다보니 게임 속 세상에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아서 정감이 갔다.
나는 내가 게임과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게 될지 상상도 못했다. 항상 재미보다는 실용성이나 효율성, 경제성 같은 딱딱한 요소들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재미를 이해하는 과정이 사람을 더 깊고 풍요롭게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재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일도 꽤나 재미있는 것 같다.